my life

나의 2023년을 돌아보며

붕둥구리 2024. 1. 5. 08:14
반응형

이 글은 나의 친구 은진이가 나에게 한 질문을 생각하며 적은 글이다.

 

나의 2023년을 돌아보며...

 

이 글은 이스탄불에서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쓴다.

 

작년의 나는 민기를 만나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었고, 주영이를 만나서 사랑의 기술을 읽게 되었다.

 

이 두 권의 책은 내 인생에서 아마도 나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책들이 아닐까 싶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 사람들과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즐기는 것. 사랑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행동에 옮길 수 있는지 이 두 권의 책을 통하여 깨닫게 되었고 그 깨달음을 나에게 선사해 준 민기 그리고 주영이에게 감사하다.

 

이 글은 아마도 내가 겪은 나의 2023년을 되돌아 보며 매 순간 사랑했던 것, 사람들과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즐겼던 것에 대한 나의 이야기이다.

 


 

2022년에 나는 한양대 소셜벤처 동아리 하이루키 활동을 열심히 하며, 루키부키라는 독서 모임을 지연이와 함께 만들게 되었다. 이 모임에서 내가 얻은 것이 정말 많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김지연 누나를 만나 요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지연이 누나가 요가가 나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정말 좋은 방법이라고 하길래 요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휴대폰 없이 5분조차 다른 곳에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서 요가를 꾸준히 하며 혼자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졌으며, 마음의 평화를 요가에서 찾았다. 그리고 지금은 요가와 테니스 이 두 활동이 내 삶의 단단한 구심점이 되었다. 또, 루키에서 지연이를 만난 것이 내 삶에 큰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지연이 덕분에 전혀 생각에도 없던 교환학생도 가게 되었고, 난생처음 들어보는 오만이라는 나라에도 가보게 되었다. 정말 고맙다, 우리 지연이. 루키부키를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지만, 새로운 멤버를 환영해주지 못하는 분위기를 느끼고 아쉽지만 여기는 내가 있고 싶은 곳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이후에 루키부키 활동을 그만하게 되었다.

 

이후에 나는 오만으로 향했다. 이슬람 국가에 가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만에서 느꼈다.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구나. 너무나도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감사한 기회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이런 세상이 있는지 조차 모른채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내가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보며 오만 사람들은 깜짝 놀라 했다. 어떻게 남자가 설거지를 하냐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깜짝 놀라는 경험이었다. 오만의 자연경관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오만의 산, 사막, 협곡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내 스스로 자연을 사랑하는구나 깨달았다. 위대한 자연의 모습을 보며 큰 감동을 느끼는 내 자신을 발견했고, 내 인생 중간중간에 자연경관을 즐기는 시간들을 마련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하루는 오만에서 23년 1학기 수강신청날이었다. 나는 에브리타임에서 꿀강 이런 것을 찾는 것이 싫고 귀찮다. 시차 때문에 오전 6시에 일어나서 수강신청을 해야 했지만, 푹 자고 오전 10시에 등교를 해서 주은이가 남는 강의들을 수강신청을 도와주었다. 남은 강의들이 없어서 모두 영어전용 강의만 수강신청하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영어 강의들에서 얼마나 행운의 사람들을 만날지.. 오만 사람들은 정말 따뜻했다.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 공항에 도착하여서 읽은 큰 문구는 잊지 못할 것이다. "If you were to come to people of Oman, they would have never insulted nor abused you." 내가 살던 세계와 다른 종족과도 같았다. 모든 부탁을 다 들어주고 친절을 베푸는 것에서 큰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친절함에 감탄했고 사랑의 기술 책에 나온 brotherhood 사랑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꼈던 순간들이었다. 오만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박상철의 무조건을 오만인들 앞에서 불렀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소개해주고 싶었다. 그때의 가슴 뛰는 기분은 잊지 못할 것이다. 함께 간 한국 친구들 은진이, 정직이형을 비롯하여 오만에서 만난 에디와 이브라힘과 같은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어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이후에 나는 한국에 돌아와 학기를 시작했다. 모두 영어 수업이라서 때문에 교환학생들과 수업을 같이 들었다. 수업 5개를 들었는데 그 중 3개의 수업을 같이 들었던 친구가 있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온 Sasha였다. 내가 수업 끝나고 말을 걸어서 친해졌다. 그 때는 몰랐다. 내가 실제로 암스테르담의 Sasha 가게에서 Sasha의 아버지와 술 한 잔 하는 사이가 될 줄은.. 리에와 진호와 Sasha와 친하게 지냈다. 밥도 먹고 학교에서 짜장면도 배달시켜 먹었다. 어느날 Sasha가 클라이밍에 같이 하러 가자고 해서 Sasha한테 클라이밍을 처음 배우게 되었고, 거기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Remy, Katie, Marta, Sebastian, Linn을 만나서 친구가 되었다. 같이 횟집에도 가고, 치맥도 하고, 클라이밍도 하고 너무나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한국의 친구들과는 사고방식이 많이 달랐기 때문에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한 점이 너무 좋았다. 내가 생각하던 사고방식,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가르쳐주신 사고방식 말고도 더 큰 세계가 있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인간관계론과 사랑의 기술에서 배운 내용들은 지구 반대편에서 온 친구들과도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1학기에 또 감사하게 만난 인연으로는 테니스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며, 진호랑 리에 그리고 테니스장에서 어느날 우연히 만난 유빈이형이 있다. 그 형은 정말 신기한 사람이었다. 나보다 1살 많았지만, 벌써 차가 있었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이만한 전문가가 없었다. 축제기간때 유빈이형의 목표는 큰 돈을 버는 것이었고, 아이스크림 머신, 펀치머신, 족발 등을 잔뜩 구해와서 잔뜩 돈을 벌었다. 그리고 엄청난 팀을 모아서 이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그 형의 능력에 감탄했다. 나는 한마당에서 제일 큰 스피커로 MC를 보며 펀치머신을 운영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상상도 못할 것 같다. 축제 기간 중 하루는 스위스에서 온 Pascal의 팟케스트에 출연하였다. 경영대에서 길가다 친해진 Pascal은 군인이자 보디빌더였다. 그 이후에 나는 스페인 비자 이슈로 큰 골머리를 앓았다. 출국 당일까지 비자가 안 나왔지만, 같이 수업에서 만난 Laura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유럽으로 떠나기 직전, 나는 내 친구들을 한자리에 모아 다같이 식사를 했다. 나의 제일 친한 친구 주호의 친구인 준우의 집에서 Farewell Party를 열었다. 서로 모르는 친구들이었지만, 나의 좋은 친구들이었기에 한 자리에 어우러져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북촌에서의 그날 밤은 생생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특이한 경험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만큼 소중한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고, 내 친구들이 서로 잘 지내면 좋겠다. 가끔 거기서 서로 만난 친구들이 따로 만나 나에게 연락을 준다. 그러면 나도 한국으로 가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Farewell Party를 마치고 나는 스웨덴으로 향했다.

 

스웨덴 땅을 밟고 입국 심사때까지 입국이 거부당할까봐 걱정이 되었지만, 마침내 스웨덴의 땅을 밟았다. 나는 항상 궁금했다. 왜 북유럽 국가들이 행복할까? 그것에 대한 답변을 스웨덴에서의 여름을 통해 찾고 싶었다. 그리고 결국 그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았다. 인간관계론과 사랑의 기술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인간관계가 사람의 가장 큰 스트레스일 수도 있고, 가장 큰 행복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만큼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배운 바로는 스웨덴 사람들은 1)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성적이 등수로 매겨지지 않고, 성소수자에 대해서 너무나 개방적이고, 전공을 만화를 해도 인정받는 그러한 사회였다. 한국과는 상당히 대비되는 그러한 모습이었다. 2) 그들의 언어는 긍정적이었다. Why not? Brilliant! That's amazing! What a view! 긍정적인 언어가 훨씬 다채로웠다. 한국어로는 우아 예쁘다, 좋아 정도라면 그들은 그것을 훨씬 더 자주, 그리고 다채롭게 표현하였다. 그러한 표현들이 인간관계의 윤활유가 되어주는 것 같다. 3) 타인을 궁금해 한다. 이 부분은 정말 신기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나이를 먼저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이름을 먼저 물었다. 모두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했다. 행복한 나라인 스웨덴으로부터 적극적으로 그들의 행복한 습관들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스웨덴에 가서 나는 계속 테니스를 치고 싶었다. 구글맵에 Tennis 라고 검색하고 Linköping Tennis Club에 다짜고짜 찾아갔다. 사람들과 인사하고 그들이 테니스 치는 모습을 계속 관람하였다. 스웨덴 사람들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하지만 곧 시간이 지나고 나도 테니스 동호회에 가입해서 활동할 수 있었다.

 

린셰핑에서 Jonas와 고템버그에서 Johanna를 만나고 콜드플레이 콘서트를 봤다. 한국에서 만났던 친구들을 실제 스웨덴에서 만나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린셰핑에서 Motala로 은서의 지도하에 수영을 하러 간 날이 있다. 은서는 정말 신기한 친구이고 더 궁금한 친구이다. 다같이 스웨덴의 여름을 즐기며 수영을 하는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 수영을 마치고 도란도란 앉아서 햄버거를 먹으며 친구들에게 물었다. What is your life motto? 그 날 들은 두명의 Life Motto는 잊지 못할 것이다. Elahi는 Don't be judgemental but be curious 라고 하였고, Michelle은 Be the best out of any situation이라고 하였다. 나는 그들의 Life Motto에 감탄하였다. 그리고 그 둘의 Life Motto를 가슴에 새겼다. 그리고 그들의 말들은 나에게 너무나 도움이 되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Elahi와 Michelle과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스웨덴에서의 여름은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만났고, 그 친구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배웠다.

 

스웨덴에서 공부하던 도중, 민기가 문득 아이슬란드에 가자고 했다. 사실 스웨덴에 오게 된 것도 민기 덕분이다. 한양대에서 길을 걷다가 민기를 만나게 되었고, 민기가 스웨덴에 함께 가자고 해서 스웨덴에 오게 되었다. 민기가 아니었다면 나는 평생 스웨덴이랑 아이슬란드 모두 와보지 조차 못했을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 좋은 사람들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월터 미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영화를 다시 한 번 감상하며 아이슬란드로 떠났다. 아이슬란드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느꼈다. 화산이 폭발하는 모습을 용암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감상하였다. 용암이 흘러내리는 모습은 아마 내가 본 자연의 모습 중 가장 위대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아이슬란드에서 크게 배운 점 중 하나는 미니멀리즘의 중요성이다. 나는 원래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었지만, 이번 기회에 미니멀리즘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매일 다른 곳에서 잠을 자며 여행을 하니, 가벼운 짐가방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가방이 가벼울수록 더 멀리 떠날 수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은 곳이 아이슬란드였던 것 같다.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 가진것이 적을수록 더 멀리 더 많은 기회들을 찾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깨달음은 민기와 대화하며 얻은 것이 클 것이다. 민기가 나에게 좋은 책을 추천해주어서, 스웨덴에 초대해주어서, 아이슬란드에 초대해주어서, 스페인어 공부하라고 동기부여 시켜주어서, 그리고 내가 해외에서 살고 싶다고 하였을 때 나의 미래를 진심으로 응원해주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스웨덴에서 한달을 마무리하고 나는 코펜하겐으로 떠났다. 코펜하겐에서 Cece를 만났다. Cece는 1년 반 전에 한양대로 교환학생을 왔던 한 때 내가 마음을 주었던 친구이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반가웠다. 만나서 1년 반동안 있었던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Cece를 한국에서 만났을 때 그녀가 말해주었던 코펜하겐의 모습, 그녀가 일하던 가게의 모습을 실제로 가보니 너무나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직도 코펜하겐에서 그녀를 만났던 시간은 꿈만 같다.

 

이후 나는 암스테르담으로 향했다. 암스테르담에서 Sasha를 다시 오랜만에 보았을 때, 그 반가움은 잊지 못할 것이다. 낮에는 암스테르담의 곳곳, Sasha가 어릴때부터 자랐던 곳들을 눈으로 보았고, 밤에는 Sasha의 가게에서 앉아 술을 마시며 그의 친구들도 여럿 만나 대화를 하였고, Sasha의 아버지와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아버지께서 나에게 한국에서 Sasha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어서 고맙다고, 그리고 나의 유일한 로카티셔츠를 선물로 주어서 고맙다고 하셨다. 누군가 나에게 감사함을 진심으로 표현하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순간이었다. 주말에는 Remy와 Katie도 독일에서 와서 같이 클라이밍도 하고 Amsterdam Gay Parade에도 함께 갔다. 그저 잊지 못할 경험이다. 암스테르담에서 나의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나는 오슬로로 향했다.

 

오슬로에서는 Sebastian을 만났다. 그의 집에서 지내며 노르웨이에서의 일상을 즐겼다. 감사하게도 Sebastian이 내가 온 기간동안 휴가를 내어서 오슬로를 너무나 잘 소개해주었다. 같이 사우나에도 가고, 연어요리도 해 먹고, 산에서 프리즈비골프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의 험블하며 유머러스한 태도를 오래 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 태도는 주변 사람들을 기분좋게 하며, 배우고 싶은 그러한 태도이다. 오슬로에서 시간을 마무리하고, 나는 독일 슈르트가르트로 향했다.

 

아마도 그쯤 마음을 먹은 것 같다. 국인을 졸업하기로. 사실 많은 친구들이 나에게 묻는다. 너는 왜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국인을 나오냐고. 누구는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는데 왜 나오냐고. 나의 친한 친구 주호는 나에게 항상 수없이 이야기를 해준다. 심플하게 삶을 살라고. 그리고 그 심플함은 절대 절대 쉬운 것이 아니라고. (이는 물리학에서도 배울 수 있다. 엔트로피를 의도적으로 낮추는 것.) 심플하게 살기 위해서는 내가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관계들과 잘 인사를 해야한다. 그래야 새로운 기회들, 새로운 사람들이 내 삶에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나의 삶이 복잡하고 나의 삶에 너무 많은 관계들이 있다면 새로운 기회들, 새로운 사람들을마음에 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구는 그냥 카톡방에 남아 있는 것이 그렇게 힘드냐고 이야기한다. 내 머릿속을 호텔 방에 비유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아주 깨끗하고 하얗게 잘 정리가 된 호텔 방에서는 새로운 것도 해보고 싶고 의욕이 돋는다. 하지만 물건으로 가득 차고 어지러운 방에 들어서면 새로운 것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 낮아진다. 그렇게 그동안 국인이 나에게 주었던 추억들과 인연들을 감사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슈르트가르트 공항에 도착했을 때에는 스웨덴에서 만난 나의 친구들 Anna 두 명과 Thilo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Anna는 사실 완전 서프라이즈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머무르며 독일에서 즐거운 시간을 잔뜩 보냈다. 맥주와 함께하는 독일식 아침도 먹었고, 독일식 바베큐도 먹었고, Anna의 어머니도 만나뵙고, 함께 수영장도 가고, 밤마다 맥주를 마시며 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오로지 친구라는 이유로 이러한 호의를 베푼다는 것.

 

이후 나는 스위스 바젤로 향했다. 바젤은 아마도 내가 가본 도시 중 여름이 가장 아름다웠던 도시이지 않을까 싶다. 바젤에는 나의 친구 Pascal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그가 너무 반가웠다. Pascal은 나에게 바젤의 곳곳을 소개해주었다. 저녁에는 그의 친구 Remy를 만나서 함께 스위스의 치즈 음식 르꼴레트를 먹었다. 그 음식은 Pascal이 한국에 왔을 때 너무나도 그리웠다고 하며 먹은 음식이다. Remy는 바젤 병원의 병원장의 아들이자 미래에 그곳을 이어받을 의사였다. 이러한 신기한 인연도 만났다. 바젤에서 하루는 Pascal과 함께 바이크를 타고 바젤 외각의 산맥에 올라왔다.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와의 작별 인사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나에게 큰 호의를 베풀어 주었고 덕분에 형재에의 따뜻함을 느꼈다.

 

나는 파리로 향했다. 사실 스위스 바젤의 강에 수영을 하며 휴대폰이 고장나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티켓도 겨우 아이패드로 캡처해서 파리 공항에 도착했다. 지연이를 만났다 그 때 만난 지연이의 모습은 잊지 못할 것이다. 50일만에 만난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우리는 함께 파리, 툴루즈, 보르도를 여행했다. 함께 쌓은 추억들은 머릿속으로 간직하고 싶다.

 

여행을 마치고 마침내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학교가 개강하기까지 2주가량의 시간이 나에게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부터 스페인에 가면 테니스가 치고 싶어서 신발과 라켓도 가지고 왔고 페이스북에서 마드리드 테니스 그룹에 가입 신청을 해 놓은 상황이었다. 나는 테니스 그룹에서 테니스를 칠 사람을 찾았다는 글을 올렸고 우연하게도 좋은 인연들을 만나서 개강 전의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같이 테니스를 치며 마드리드의 웬만한 테니스장과 테니스샵들은 거의 다 가 본 것 같다. 그중에 Carolina라는 경찰관 누나를 만났다. 그녀는 나에게 스페인의 문화를 많이 가르쳐주었다. 덕분에 스페인의 타파스 문화, 식문화, 술자리 문화 등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그녀로부터 배운 것은 초대 문화이다. 스페인에서 그들이 하는 활동들에 얼마나 쉽게 새로운 사람들을 초대하는지 Carol은 직장 동료들과의 술자리에 테니스에서 만난 나를 꺼림직없이 초대하였고, 그녀의 친구들도 자연스레 나와 친해졌다. 아마도 나를 마드리드의 매력에 처음 빠트린 것이 Carol과의 시간들이 아닐까 싶다. 나의 farewell party에서는 모두가 이런 자리가 너무나도 신기하다는 반응과는 달리 스페인에서는 이러한 문화가 너무나도 당연한 문화였다. 내가 그들에게 한국에서는 이러한 문화가 없다고 이야기하였을 때에는 그들은 깜짝 놀라면서 한국에서는 어떻게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냐고 물었다. 이 말을 듣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나의 초중고대학교 친구가 전부이다. 다른 집단의 사람들과는 친구하려고 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보니 다양성이 부족한 사회가 되어가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9월에 개강을 하고서는 학교에서 내가 테니스 동아리를 직접 만들었다. 무려 100명 가까이 그룹에 가입을 하였다. 하지만 대부분 열심히 참여를 하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여기서 정말 소중한 인연들을 만났다. Matej, Clement, David, Bianca 그들과 한 학기동안 매주 만나 테니스를 열심히 쳤고 그들과의 추억들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기억들로 남을 것이다. 특히 Matej와는 단 둘이서 테니스를 많이 쳤는데, 훗날 그가 나한테 마드리드로 석사를 오면 나도 따라 오겠다고 이야기했다. 그 말에 담긴 의미가 컸다. 좋은 친구를 만나서 감사하다.

 

스페인에 있으면서 지연이와도 함께 여행을 다녔다. 짧은 여행들이었지만 너무나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들이었고, 지연이가 아니었다면 그 누구와도 내가 내 스스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편히 보여줄 수 있는 그러한 소중한 시간들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10월에는 나의 유럽 친구들이 비엔나에 한 자리에 모이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름은 Hoony World Tour - Vienna Edition이다. 아무리 유럽이 자유롭다고 하지만, 모두 시간을 내어 비행기까지 타고 비엔나에 모이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비엔나에 도착해서 도나우 강가에 앉았다. 저 멀리 다리 위에서 미셸이 나에게 인사를 했다. 너무나 반가운 순간이었다. 그녀의 따뜻한 목소리가 너무나 기억에 생생하다. 하나둘씩 친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사실 그날들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어떻게 유럽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30명 정도가 모인 것 같다. 비엔나에서 친구들과 만나 밥을 먹고 맥주를 마시고 비엔나의 길을 걷고 잔디에 앉아 빌리 조엘의 비엔나를 불렀던 순간들은 정말이지 꿈만 같다. 친구들이 나에게 이야기했다. 너 덕분에 이렇게 다 모인거야, 고마워. 물론 나만을 보러 온 것은 아닐 것이다. 비엔나 여행도 해 보고 싶었을 것이고, 서로 보고싶은 친구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를 위하여 이러한 자리를 만들어주고 런던, 파리, 바르셀로나, 부다패스트, 암스테르담, 룩셈부르크, 등등 곳곳에서 와 준 친구들에게 감사할 따름이고, 나에게 이러한 시간을 선사해줌에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친구들을 남겨두고 비엔나를 하루 먼저 떠나야했다. 내가 떠나는 마지막날 밤 친구들이 다음 만남 Hoony World Tour - Barcelona Edition을 하자고 했다. 나는 좋다고 하고 12월에 우리는 다시 바르셀로나에서 만났다. 이번에는 다같이 숙소도 구해서 밤에 숙소에서 다같이 놀며 즐겼다. 바르셀로나는 나의 친구 Elahi의 도시인데, 비엔나에서 그가 Not judgemental, but curious 그의 인생 모토를 타투할까 고민이라고 했는데, 바르셀로나에서 타투한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이렇게 비엔나에 이어 바르셀로나에서 또 만난 것도 신기한데, 친구들이 1월 28일 나의 생일날 베를린에서 Hoony World Tour - Berlin Edition 을 만들어준다고 한다. 나는 가족여행이 있어 참여가 힘들 것 같지만, 나의 생일을 멀리서 축하받으니 기쁠 따름이다. 사실 누군가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나 신기해하고 대단하다고 한다. 어떻게 한국의 학생이 유럽까지 가서 그렇게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친구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냐고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매우 심플할 것이다. 나는 내 눈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민기가 주영이가 추천해준 책에 나와있는대로 사랑했을 뿐이다.

반응형